교계

드디어 메이첸의 시대로… “자유주의인가, 기독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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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신학교와 미국 북장로교 (13) 프린스턴 출신 신학자들

자유주의, 역사적 기독교 벗어나
영감에 대한 프린스턴 교리 찬성
초자연 교리와 속죄 부인 불인정
구 프린스턴 따라 합리적 변증도
성경무오 교리 수호해 결국 독립
웨스트민스터 세우고, 총회장도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한 메이첸 박사를 재현해낸 모습. ⓒ챗GPT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설립한 메이첸 박사를 재현해낸 모습. ⓒ챗GPT

2) 프린스턴신학교 출신 주요 신학자들(계속)

(4) 메이첸 (Jone, Gresham Machen, 1881-1937)

존 그레삼 메이첸은 구프린스턴 신학 전통의 마지막 주자이며, 구프린스턴 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학의 연결고리에 있는 신학자이다. 그리고 평양신학교 한국인 교수이었던 박형룡·박윤선 박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평양신학교를 이해하고 한국 장로교 신학을 이해하고 알기 위해서는 메이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메이첸은 1881년 7월 28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더 웹스터 메이첸(Arthur Webster Machen)은 교회의 장로였고,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였다. 어머니는 조지아주 메이컨이 고향인 메어리 존스 그레샴(Mary Jones Gresham)이다. 그녀는 남부에 정착한 영국계 가문들의 후손이었고, 1865년 메이컨 웨슬리언대학(Wesleyan Coiiage)을 졸업했다.

존 그레샴 메이첸은 17세 때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고전어, 즉 헬라어·라틴어와 중세 영어 등을 공부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에 가기 전 한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이미 그곳에서 6년 동안 라틴어와 헬라어, 기하학, 대수학, 자연과학 등을 배워 성적은 반에서 대부분 1등이었고 점수는 99점에 가까웠다고 한다.

메이첸은 존스홉킨스대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다, 1902년 가을 학기에 프린스턴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메이첸은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교 교수들에게 큰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지도와 도움을 받았다.

메이첸이 입학할 당시 프린스턴신학교는 개혁주의 정통 신학교의 대표 주자였다. 학문성은 물론, 성경의 신적 권위를 지지하고 성경의 권위에 대해 확고한 신학을 정립하고 이를 존중하는 학교였다. 아치볼드 알렉산더로부터 찰스 핫지, 벤자민 워필드에 이르기까지 변함 없었던 전통이 메이첸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메이첸은 1921년 11월 ‘자유주의인가 기독교인가(Liberalism or Christianity)’라는 제목으로 그의 기독교 이념 핵심을 발표했다. 메이첸은 해리 에머슨 포스딕(Harry Emerson Fordick, 1878-1969)과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설교되는 종교는 단순히 기독교의 다양한 종류 중 하나가 아니라, 전혀 다른 종교라고 결론지었다.

메이첸은 근대 자유주의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일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교라고 선언했다. 자유주의는 모든 근본적 교리에서 역사적 기독교의 전통으로부터 떠났다고 말했다.

메이천은 역사적 기독교는 신조들이 기독교적 경험의 표현이고, 기독교적 경험의 토대가 되는 사실들의 표현임을 주장했다. 사실들로 구성된 교리들은 기독교 메시지의 근본 토대였다. 메이첸은 자유주의자들이 인간의 죄의식을 상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정통 기독교 신앙은 죄의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속죄를 통해 죄의 용서를 기뻐한다고 했다.

또 그는 영감에 대한 프린스턴의 교리에 전적으로 찬성했다. 성령이 성경 저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현대주의자들은 기적들, 동정녀 탄생, 대속적 속죄,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다. 초자연적인 것과 속죄를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를 부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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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신학교는 학문적으로 구학파(Old School)이고, 북장로교와 연결돼 있었다. 프린스턴은 정통 칼빈주의 사상이 견고한 신학적 전통을 수립한 학교이다. 프린스턴신학교는 종교에서 관념의 우위를 강조했고, 성경 무오류의 엄격한 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프린스턴의 전통은 메이첸의 원래 신앙적 유산처럼, 성경에 대한 높은 수준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성경 영감에 대한 고등비평의 공격에 대한 반격에서, A. A. 핫지와 워필드는 알렉산더와 찰스 핫지가 주장했던 성경 영감 교리를 더욱 다듬고 발전시켰다.

그들은 “성경의 모든 주장들은 원 기록의 그대로의 말(ipsissisma verba)이 그들의 자연스럽고 의도된 의미에서 확정되고 해석될 때 어떤 오류도 없다”고 썼다. 워필드가 프린스턴에서 계속 영역을 확대해가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성경무오성의 교리를 계속 나타냈을 때, 메이첸은 이 성경 무오 교리에 완전히 동의하게 된다.

메이첸에게 구프린스턴 신학은 그의 학문적 진리를 결정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이 있었고, 과학적이며 합리적이고 성경적이었다. 한때 독일 유학을 떠나 학문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으나, 프린스턴의 조력자이자 스승들을 통해 진리의 길로 전진할 수 있었다.

당시 프린스턴 신학자들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옹호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헌신과 같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프린스턴 교수들은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 요리문답서에 서명해야 했다.

A. A. 핫지도 신앙고백서를 철저히 신뢰했고, 워필드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옹호하여 고백주의에 근거한 신앙고백서 개정을 주장하던 하던 찰스 브릭스(Charles Briggs, 1841-1913)에 반대했다.

메이첸은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벤자민 워필드에게 조직신학을 배우면서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됐다. 기독교 신학이 가장 변증하기 적합하고, 성경적 기독교는 항상 개혁 신앙 안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첸은 1913년 북장로교회의 뉴브런스윅(New Brunswick) 노회에 가입하고, 1914년 4월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무오한 법칙”임을 엄숙하게 선서하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리임을 서약한 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메이첸은 프린스턴 신학에 헌신하면서 변증적인 신학의 기초적 원리를 세우고, 구프린스턴 신학의 귀납적 원리로 성경의 초자연주의적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 진정 과학적이며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메이첸은 기독교인들이 참된 기독교를 위해서는 진리의 논쟁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기독교의 합리성을 변증하기 위해 구프린스턴 신학 원리를 따랐다. 그는 기독교를 합리적으로 변증할 수 있고, 기독교 신앙의 영적 문제들을 신학과 성경을 통해 풀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신학과 변증은 참된 기독교 역사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이금석 교수.

▲이금석 교수.

프린스턴신학교는 1920년대 오랫동안 신학교 논쟁으로 진통을 겪다, 1929년 드디어 분열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 분열의 직접적 원인은 어번 선언(Auburn Affirmation)이다. 1921년 핫지 교수에 이어 워필드 교수가 서거하자, 프린스턴신학교는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신학교가 서서히 신학적 사상에 대한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신학교가 교단 소속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교장이었던 스티븐슨은 신학적 중도 노선 정책과 포용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이에 메이첸과 신학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을 따르는 ‘어번 선언’에 동조하는 이사들이 참여하는 단일 이사회 체제가 총회를 통해 인준을 받아 더 이상 보수 정통의 신학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달은 메이첸은, 23년간 봉직한 프린스턴을 드디어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뜻있는 교수들과 학생들과 함께 1929년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다.

이때 함께 옮긴 대표적인 교수는 로버트 딕 윌슨(Robert Dick Wilson), 오스워드 앨리스(Osward T. Allis) 그리고 코넬리우스 반 틸(Cornelius Van Til) 등이 있었다. 교단 해외선교부가 하버드대학교 호킹(W. E. Hocking) 교수가 집필한 『선교를 다시 생각하다(Re-thinking Mission)』의 자유주의 선교 사상을 받아들인 데 대해 메이첸은 비판했다.

그러나 그가 속했던 뉴브런스윅 노회가 청원한 안건을 총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메이첸은 독립된 선교부를 만들었으나, 총회의 압력으로 총회 소속으로 더 이상 신학의 자유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드디어 메이첸은 1936년 6월 11일 필라델피아에서 새로운 아메리카 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를 창립하고, 초대 총회장에 당선된다.

이금석 교수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신학과 교수(교회사)
국제개혁 & 청교도연구소 소장
십자가교회 담임목사(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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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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