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조성래 칼럼] 예수를 알면 알수록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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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래 목사 가족사진.

▲조성래 목사 가족사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말씀은 인류 역사 속에서 수많은 희생과 헌신으로 증명됐습니다. 자신보다 타인을, 그리고 친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 감동적인 실례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어난 유명한 일화입니다. 한 수용자가 탈출하자, 수용소 측은 경고의 의미로 무작위로 10명을 골라 굶겨 죽이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선택된 이들 중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라는 남자가 “내 아내와 아이들은 어떡합니까!”라며 절규했습니다. 이를 본 콜베 신부는 앞으로 나아가 “나는 신부요. 저 사람에게는 가족이 있으니 내가 대신 죽겠소”라고 말하며 대신 죽음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결국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살아남은 남자는 평생 그 신부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고(故) 이수현 씨(도쿄 신오쿠보역 사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국경을 초월한 친구(이웃) 사랑의 사례입니다. 2001년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이수현 씨는 도쿄 신오쿠보역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발견했습니다. 열차가 들어오는 긴박한 순간에도 그는 망설임 없이 선로로 뛰어내려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 노력했습니다. 비록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희생은 한일 양국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모르는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건 그의 행동은 “누가 나의 이웃(친구)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뜨거운 답을 남겼습니다.

“예수를 알면 알수록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무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을 깊이 알아가는 ‘관계’의 여정입니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만큼은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왜 우리는 그분을 깊이 알아갈수록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까요?

첫째, 앎은 사랑의 시작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단어는 단순한 지식적 정보를 넘어선 ‘야다(Yada)’, 즉 경험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예수 님의 성품을 알아갈 때, 그분이 단순히 심판주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눈물 흘리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그분의 친절함, 그분의 겸손함, 그리고 죄인을 향한 끝없는 인내를 발견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서서히 그분께 설득당하기 시작합니다.

둘째, 십자가에서 앎과 사랑이 만납니다. 예수 님을 알아가는 지식의 정점은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에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빌립보서 3:8).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는 확증입니다. “예수 님의 희생적 사랑”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심(로마서 5:8). “찾아오시는 사랑”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치 않으시는 목자의 심정. 그분이 나를 위해 무엇을 지불하셨는지 그 ‘깊이’와 ‘너비’를 알게 될 때, 우리의 냉랭했던 가슴은 뜨거운 사랑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닮아감으로 완성되는 사랑”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님을 깊이 알아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내 안에 채워질 때, 비로소 나도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결국, 예수를 아는 지식은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내려와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됩니다.

결론

혹시 신앙이 건조하게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다시 복음서로 돌아가 그분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 보십시오. 그분이 하신 말씀, 그분이 만난 사람들, 그분이 흘린 눈물을 추적해 보십시오. 예수를 아는 지식에 정비례하여 당신의 사랑도 깊어질 것입니다. 그분을 알아가는 일에 당신의 삶을 투자하십시오. 그 끝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악단원들을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타인의 공포를 달래주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킨 분들입니다. 배가 침몰하며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8명의 악단원은 구명보트에 타는 대신 악기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배가 완전히 잠기기 직전까지 찬송가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며 승객들의 공포를 진정시켰습니다. 생존의 기회를 포기하고 동료와 승객들의 마지막 평안을 위해 연주한 그들의 모습은 숭고한 우정의 한 형태였습니다.

꼭 목숨을 버리는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작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희생”, 내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슬픔에 빠진 친구의 이야기를 밤새 들어주는 것. “평판의 희생”, 친구가 오해를 받을 때, 나에게 피해가 올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말해주는 용기. “물질의 희생”, 내가 꼭 사고 싶었던 것을 포기하고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돕는 일.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 4:8)”

국제국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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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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