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영화 ‘신의 악단’ 속 북한과 가짜/진짜 신앙인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태복음 9:12-13)”.

2026년 새해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올 겨울은 좀 따뜻한가 싶었더니, 시샘하는 한파가 몰아쳐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깊은 겨울입니다. 마침 필자의 며느리로부터 “‘신의악단’이라는 영화를 예매했으니 아버님 어머님 보시라”는 문자를 받고, 예약된 시간에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영화 ‘신의악단’은 대북 제재로 돈줄이 막힌 북한이 국제사회의 2억 달러 지원을 얻기 위해 보위부가 ‘가짜 찬양단’을 만들어 달러를 얻는 임무를 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2억 달러 지원 조건으로 평양에 교회 2곳을 세우고, 찬양단이 찬양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거래를 약속합니다.

보위부 장교들은 NGO 대표가 2주 뒤 오기 전에 악단을 만들어 찬양하되, ‘가짜로 하면 안 되고 진짜로 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습니다. 지금 있는 교회는 개신교 소속으로서, 6.25 전쟁 이후 두 번째로 북한 땅에 설립된 예배당을 가진 교회입니다. 가짜로 시작한 찬양과 성경 읽기가 그들의 심령을 변화시켜 진짜 신앙인이 된 사례가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고, 이것이 바로 영화 ‘신의악단’의 뼈대가 됐습니다.

영화 ‘신의악단’은 꼭 종교적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관람할 이유가 충분해 보입니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돼 폐쇄적인 북한의 실상을 엿볼 수 있고, 자문을 통해 완성된 북한 사투리가 극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특히 박시후 배우가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를 부를 때, 과거 상처와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인물의 가쁜 호흡이 절절히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연기자가 아닌 실제 변화된 크리스천으로 보여, 신앙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본문 말씀 중 의사는 예수님을, 건강한 자는 바리새인을, 병든 자는 죄인을 각각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메시야직 사명은 오만한 독선주의자들보다 하나님의 백성 중 종교적으로 버림받은 자들을 부르시는데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13절)”는 말씀은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제사’는 현재 죄를 용서받기 위해 혹은 감사드리기 위해 드려지는 것이었지만, 호세아 때에는 형식화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율법의 의무를 지키는 것보다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고 경고합니다. 여기 예수님께서는 긍휼을 베풀기 위해 죄인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이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들의 의를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믿음으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죄인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호세아 6장 6절에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인애’란 변치 않는 자비와 사랑을 말하며,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제사나 번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복을 바라고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교만한 자세를 견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조건과 환경에 따라 이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7절 말씀은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입니다. 여기서 ‘아담’이란 인명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지명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인명으로 해석할 경우 첫 인간 아담, 즉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명으로 해석할 경우 우상을 섬기는 산당이 있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두 의미를 다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식과 인애가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범한 각종 죄악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호세아’ 이름의 의미는 ‘구원’입니다.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외적으로 번영과 성장을 누리고 있었지만, 내적으로 도덕적 부패와 영적 간음이 만연하던 때였습니다. 특히 호세아는 여호수아, 예수 등의 이름과 같은 히브리어 어원에서 나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의미까지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신앙인들조차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찾지만,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 사람으로서의 행동은 찾아볼 수 없고, 행실이 오히려 비신자들보다 못합니다. 개인 이익에만 집착하는 21세기 바리새인들 같습니다.

‘제사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 의미는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마음 없이 잇속에만 매달리는 것을 비유합니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배고픈 시절이라 제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좋아하는 제사 음식에만 눈독을 들여 속히 제사가 끝나기만 기다렸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이는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하는 일입니다. 학생이 공부는 뒷전에 두고 딴짓을 하거나, 직장인들이 업무는 등한시한 채 이익이 되는 일만 골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인들 역시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늘 이야기하지만, 실상 자신의 뜻대로 판단하고 생각하며 정작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가 계속 밀려오고 있습니다. 인간이 기계에 대체되는 세상,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으로 전락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도 AI가 담당합니다. 가장 먼저 대체되는 직업이 의사, 약사, 판검사, 변호사, 교사 순이고, 기업 CEO나 임직원, 공무원, 회계사, 세무사, 관세사, 변리사, 감정사, 평가사, 감리사, 보험설계사, 재분석가, 품질관리사 등이 AI로 대체될 것임이 예고됩니다.

인간 의사와 AI 의사가 서로 다른 처방을 내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자, 환자 100명 모두 “인공지능 의사의 처방을 따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암환자들은 인간 의사와 AI 의사 왓슨의 치료법이 다르게 나오면, 왓슨의 처방을 따랐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 의사들이 놓친 암 치료법을 제시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제 ‘명의’라는 단어조차 사라진다고 합니다. 있다면 인공지능 AI 의사가 명의를 차지하는 것 아닐까요? 다가오는 미래에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아는 만큼 누리고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미래를 먼저 알고 대처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배척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후회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간의 탐욕은 끝없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말세에 의인을 보겠느냐”고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그저 흘러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죄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특히 세상 법을 어겼을 때 교도소에 가는 것뿐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안 짓고 살아가는 완전한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인데, 죄의 대가는 죽음이므로, 모든 사람은 결단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영혼에까지 영원한 형벌이 가해짐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위중한 병에 걸렸거나, 최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임에도, 나에게는 먼 훗날 이야기 아니면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죽음이 없는 영원한 세상을 살기라도 하듯 죽음을 떨어뜨려 놓은 채 태연한 일상으로 젖어듭니다.

하지만 죽음을 올바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삶의 모습을 변화 시켜 놓습니다. 죽음을 단순히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믿음 생활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고요한 음성을 들었다면, 최선을 다해 실천하는 믿음의 형제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잿밥에만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 뜻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일부 국회의원들이 종교단체 폐쇄 가능 법안을 발의했다고 합니다. 여당 국회의원 중 기독교인 수가 그렇게 많은데 그들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목숨 걸고 법안을 막아낼 때 아닌가요? 교회 지도자들은 왜 침묵하고 있는지요? 기독교를 박해하고 탄압하던 로마 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요? 북한 공산주의와 함께 하려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들의 권력을 위해, 그들 총수에게 아부하는 것인가요?

이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까요? 이승만 대통령은 기도로 대한민국을 세웠고, 학교를 세웠으며, 전쟁통에 부모 잃은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특히 외교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지금 누구 덕분에 호화스런 생활에 젖어 사는 것인가요? 그렇게 싫어하는 미국에 자녀를 유학시키고, 틈만 나면 미국으로 가는 그들은 어느 나라 국민들인지요?

전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 말살을 시도했던 역사의 끝에는 참혹한 희생이 따랐다는 것을 그들은 왜 모르는 것인가요? 백성들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예배(제사)를 드리는 아름다운 건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신앙인들과 백성들은 함께 죄를 무서워하며 살아가는 이 땅 백성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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